경치와 사진/참고자료

안개 시 모음

hongil81 2013. 8. 22. 07:53

안개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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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나희덕 
나는 바늘이다 
하얀 무명의 장막 속으로 
마악 몸을 밀어넣기 시작한다 
나는 종이다 
눅눅해지도록 누워 있다 
더 이상 젖을 수 없을 때까지 
나는 갈매기다 
너무 멀리 날아와버렸나보다 
갯내가 나지 않는다 
나는 박쥐다 
나는 새가 되지 못한 게 아니라 
쥐가 되지 못했다 
나는 맨드라미다 
닭벼슬 같은 내 입술을 그가 삼켜버렸다 
금잔화가 따라 울었다 
나는 느티나무다 
가지 끝으로 누군가의 살 속을 찌르고 있음을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나는 가로등이다 
어둠이 내리기 전 
그는 내 배경이 되어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좌석버스다 
아무도 올라타지 않았는데 
좌석은 이미 만원이다 
나는 자전거다 
나를 타고 간 사람 돌아오지 않는다 
어디서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자꾸 들린다 
나는 이미 지워졌다 

물안개 
                                    / 김수목
친전리의 고인돌 유적지에서 보았다. 
모든 고인돌들이 
집채 만한 원시인의 무덤들이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놓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물이 흐르는 방향이라고 한다 
원시인들도 물처럼 흐르고 싶었을 것이다 
흐르고 흘러 
몸도 영혼에 닿고 싶었을 것이다 
흙이 되고 진토가 되고 
주검은 물처럼 흘러갔다 
오늘 새벽 나는 
냇물 위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신새벽에 
스물거리며 피어 오른 물안개는 
자꾸만 내게로 다가왔다가 
다시 강을 향하여 
강심을 향하여 소리 없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안개
                                  / 오규원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