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il81
2013. 1. 28. 14:24
★정홍일
달의 여자
깊은 밤 홀로 깨어나 달과 만나네 나는 달빛으로 빚어진
여자, 이마에 부서지는 내 전생의 서늘함
달과 지구의 거리는 38만 4400킬로미터 광속거리로 1.3초
1.3초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너에게로 가는, 내 안에 너를
들이는, 눈꺼풀 지긋이 여닫는 데 필요한 충분한
1.3초란 내 질량이 공중에 머무는 동안, 아찔한 달빛
읽어낼 수 없어 의사는 폐경의 시니컬한 처방뿐 내
안의 달빛 보려하지 않아 달빛으로 빚어져 달의
사랑을 익힌 몸이 달빛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몸,
그 몸 다시 달빛 차오르는 동안
1.3초란 달 속의 토끼들 수없이 태어나고 계수나무
이파리 팔랑거리고 폴짝폴짝 귀를 늘리고 몇 번의
소풍을 다녀오고 마침내 달 박으로 뛰쳐나와 알록달록
귀고리가 되고 하이힐 따각따각 달처럼 환한 이마로
달빛 속을 쏘다니는 동안
눈동자 깜빡 깜빡, 나의 하루가 건너가고 달의
하루가 건너오네 내 안의 너무 밝고 너무 뜨거운
기억들이네 늙은 여인의 독백 같은 식은 달빛이네
녹슬어 낯설어진 환영이 달빛 속에서 빙 빙 빙 내
병든 달빛 의사는 고쳐주지 않네 둥글게
차올랐다 손톱처럼 가늘어진 삭망, 고성능
망원경에 잡힌 크레이터의 실금들, 구멍 숭숭
초겨울 바람 같은 얼룩들, 깊은 밤 홀로 서 있는
그림자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네 달빛 아래
사라져간 폐점 폐교 폐선……폐字의 영상을
닮은 저 차가운 달
1.3초의 시간으로 와 닿는, 테두리에 갇힌
거뭇거뭇한 전생이 내 손등에 목덜미에 가슴에
막 둥지를 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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